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능력주의 도덕적 오만 노동 존엄성 공동선 사회 계약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이 폭로하는 능력주의 사회의 민낯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능력주의는 현대 사회의 기본 원칙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가장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학교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러한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능력주의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공정한 것인지, 그리고 이 시스템이 사회에 미치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사회가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오만을,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굴욕감을 안겨주면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 사회적 불평등과 계층 갈등을 통해 능력주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단순히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선과 시민적 덕목을 바탕으로 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공정성 논란과 세대 갈등, 계층 이동의 어려움 등을 이해하는 데도 큰 통찰을 제공하는 필독서입니다.
능력주의 사회의 숨겨진 문제점과 한계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가 표면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성공과 실패가 온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성취에는 타고난 재능, 가정환경, 교육 기회, 사회적 배경, 운 등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능력주의 사회는 이러한 요소들을 간과하고 모든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명문대학 입학이 성공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지면서,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더 나은 교육 기회와 자원을 독점하게 됩니다. 사교육비 지출, 특별활동 참여, 해외 경험 등은 모두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들입니다. 결국 능력주의라는 이름 하에 기존의 사회적 특권이 대물림되는 구조가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샌델은 이를 '능력주의적 상속'이라고 표현하며, 진정한 기회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능력주의는 성공을 지나치게 개인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가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게 되고,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책임감의 약화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개인적 실패로 받아들이며 자존감 하락과 사회적 소외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체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도덕적 오만과 사회적 분열의 심화
샌델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능력주의가 성공한 계층에게 심어주는 '도덕적 오만'입니다.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개인적 성취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자신과 달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 연대와 공감 능력을 크게 저해합니다.
이러한 도덕적 오만은 정치적 영역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정치와 정책을 주도하면서, 이들의 관점과 가치가 사회 전체의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과 이해는 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다수 시민들의 삶과는 괴리가 클 수 있습니다. 샌델은 이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에 위배된다고 지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평등한 참여와 의견 반영을 전제로 하는데, 능력주의적 엘리트 지배는 이를 훼손합니다.
한편 성공하지 못한 계층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존중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개인적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경험은 깊은 좌절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포퓰리즘 정치의 부상과 사회적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샌델은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 등을 능력주의에 대한 반발로 해석합니다. 기존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소외감을 느낀 시민들이 반엘리트 정서를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는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노동의 존엄성과 기여의 재평가
마이클 샌델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드러난 현실을 예로 들며 우리 사회의 가치 평가 기준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었던 일들은 의료진, 배달원, 청소원, 상점 직원, 농부 등이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필수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은 그들의 실제 기여도에 비해 현저히 낮았습니다. 반면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고소득 전문직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기여'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는 일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의 기본적 기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많은 일들이 저평가되고 있습니다. 샌델은 이러한 왜곡된 가치 평가 시스템이 능력주의의 핵심 문제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모든 정직한 노동에는 존엄성이 있으며, 사회적 기여도에 따른 인정과 존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고소득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사회에 필요한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은 마땅한 대우와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보상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인정과 시민적 평등의 문제입니다.
샌델은 또한 현재의 고등교육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합니다. 4년제 대학 교육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는 사회적 압력은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는 건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기술 습득 경로가 존중받고, 여러 종류의 재능과 기여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선을 위한 새로운 사회 계약
샌델이 제시하는 대안의 핵심은 '공동선'의 회복입니다. 개인의 성취와 경쟁만을 강조하는 능력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번영과 복지를 추구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공한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취가 사회적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모든 시민이 자신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는 먼저 교육 시스템의 개혁이 있습니다. 명문대학 입학을 둘러싼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고, 다양한 교육 경로와 직업 선택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직업 교육과 기술 교육의 위상을 높이고, 평생 학습 기회를 확대하여 모든 시민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대학 입학에서 사회경제적 배경이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도 필요합니다.
경제 정책 측면에서는 노동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필수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 최저임금 인상,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돌봄 노동, 서비스업, 제조업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복지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평가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샌델은 또한 시민 참여의 확대를 강조합니다. 정치와 공공 영역에서 모든 시민의 목소리가 평등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시민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연대의 시민적 덕목
샌델이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겸손'입니다. 개인의 성취가 전적으로 자신의 공로라고 여기는 오만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공에 기여한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타고난 재능, 가족의 지원, 좋은 교사들과의 만남, 사회적 인프라, 그리고 운까지도 개인의 성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타인에 대한 감사와 연대의식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상호 의존성에 대한 인식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모든 성취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기여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의사는 농부가 기른 음식을 먹고, 청소원이 깨끗하게 관리한 병원에서 일하며, 교사들이 교육한 간호사들과 협력하여 환자를 치료합니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을 인정할 때 진정한 사회적 연대가 가능해집니다.
맺음말: 진정한 공정함을 향한 여정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능력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중요한 저작입니다. 능력주의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만능 해결책도 아니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공정함은 개인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조건과 운의 역할을 함께 고려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시민의 기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적 연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는 어려운 과제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겸손과 연대의 시민적 덕목을 기르고, 제도적 개선을 통해 더 포용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러한 변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