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리뷰 문학평론가 산문집 문학사용법 위로 인식 완벽분석
저자: 신형철 (문학평론가, 1976년생)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간일: 2018년 9월 22일
장르: 산문집, 문학에세이
이전 저작: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중 한 명입니다. 아름다운 문장과 정확한 비평이 함께하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독자들의 깊은 사랑을 받아왔죠. 이번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작품으로,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을 비롯해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글들과 미발표 원고들을 한데 모은 것입니다.
책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이면서도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공부 과정에서 느끼는 또 다른 슬픔에 대한 성찰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슬픔을 관통하는 8년간의 기록
이 책은 2010년 이후 8년간 저자가 겪었던 깊은 슬픔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세월호 참사,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회적 비극부터 아내의 수술과 같은 사적인 아픔까지, 개인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느낀 슬픔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슬픔의 시간들을 "자주 울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울음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버티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슬픔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어집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자신의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슬픔"이라는 주제가 자신의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부분입니다. 이는 비단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이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명제 중 하나는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이야말로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우리에게 "정확한 인식"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정확한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의 근거가 됩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는 그의 말처럼, 위로는 단순한 온정이나 따뜻한 말보다는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학 작품들은 인간의 슬픔에 대한 가장 정교한 분석과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포착해낸 슬픔의 본질과 양상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슬픔뿐만 아니라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문학을 통한 슬픔의 공부법
신형철은 이 책에서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 슬픔을 분석하고 해석합니다. 시와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노래, 사진 등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아우르며 "온기를 잃지 않으려 했던" 그의 노력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특히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 대한 그의 분석은 인상적입니다. "나는 스토너가 죽어 이야기가 멈출 때까지 이 소설을 따라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에서, 문학이 독자에게 미치는 압도적인 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라는 로버트 팬 워렌의 말을 인용하며, 문학의 예측 불가능한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런 문학 작품들과의 만남을 통해 저자는 슬픔의 다양한 층위와 의미를 탐구합니다. 개인적 상실의 슬픔, 사회적 참극에 대한 슬픔, 존재론적 고독에서 오는 슬픔 등이 각각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의 경계
이 책에서 가장 깊이 있는 성찰 중 하나는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자에 따르면,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즉, 문학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우리 자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문학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환상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문학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명확히 규정합니다. 문학은 만능 치료제가 아니지만, 자기 인식과 성찰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평론가의 삶과 철학이 담긴 개인적 기록
이 책은 평론가로서의 신형철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신형철을 보여줍니다. 평론가가 바라본 사회와 문화, 그의 문학관은 물론이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과 개인적인 고민들까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의 수술과 같은 사적인 경험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개인적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개인사가 곧 보편사가 되고, 사적 경험이 공적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또한 책에는 저자의 "인생 책 리스트"와 그간 써온 추천사들도 포함되어 있어, 한 평론가의 문학적 취향과 안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과 문학을 읽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학 비평의 새로운 가능성
신형철의 글쓰기는 전통적인 문학 비평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엄밀한 텍스트 분석과 개인적 체험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학술적 엄정성과 감성적 공감이 조화를 이룹니다. 이는 문학 비평이 단순히 작품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문제와 직접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이라는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문학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문학을 박제된 예술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살아있는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법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독서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문학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거나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슬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여러 면에서 슬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경쟁사회의 스트레스와 관계의 어려움이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각종 재난과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인가는 현대인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신형철은 이 책을 통해 슬픔을 단순히 극복하거나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 슬픔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진실들에 주목합니다. 슬픔을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슬픔에 대한 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픔을 부정하거나 억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슬픔에만 매몰되지도 않는 균형잡힌 자세입니다. 슬픔을 온전히 경험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찾고 배움을 얻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과 깊이 있는 사유
신형철의 글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의 문장력입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아름다운 문장이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지적 즐거움과 감성적 감동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복잡한 철학적 개념도 명료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능력은 이 책 곳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예를 들어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라는 문장에서는 위로와 인식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표현으로 전달됩니다. 이런 문장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듭니다.
또한 그의 글에서는 학자적 엄정성과 문인적 감수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룹니다.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개인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딱딱한 학술 논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상적인 수필도 아닌, 독특한 장르의 글을 만들어냅니다.
독자에게 주는 실질적 도움
이 책은 단순히 읽는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통찰들을 제공합니다. 특히 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법을, 슬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슬픔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 삶의 어려운 순간들을 견디고 극복하는 데 문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단순한 문학 에세이를 넘어서 삶의 철학서이자 실용적인 지혜서입니다. 슬픔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문학의 힘에 대한 믿음과 함께 그 한계에 대한 냉정한 인식까지 담고 있어,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슬픔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빨리 극복해야 할 것, 숨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신형철은 이 책을 통해 슬픔 역시 인간 경험의 소중한 일부이며,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개인적 슬픔과 사회적 슬픔을 연결시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나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으로 슬픔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 슬픔을 더 잘 견딜 수 있고 또 그것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특히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슬픔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우리에게 슬픔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의 진실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이해야말로 진정한 위로이자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은 슬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혜와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문학의 힘을 믿으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는 성숙한 태도, 슬픔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 잡힌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