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리뷰 사회역학 지식불평등 의학편견 건강권리 완벽분석

 

우리 몸이 세계라면. 이미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많은 의학 지식들이 과연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사무실 적정 온도 21도가 70kg 남성을 기준으로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바로 이런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사회역학자가 이번에는 '지식'에 초점을 맞춰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생산과정을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1,120편의 논문과 300여 편의 문헌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합을 보여줍니다.
도서 정보


저자: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사회역학자)
출판사: 동아시아
출간일: 2018년 12월 7일
분량: 양장본
부제: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

김승섭 교수는 데이터를 통해 인구집단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회역학자입니다.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는 사회적 상처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식 자체의 생산과정을 문제 삼습니다.

책의 제목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의 세계로 본다면, 그 세계는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이라는 것입니다. 의학과 보건학의 지식들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특정한 권력 관계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산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지식 생산의 숨겨진 불평등

이 책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 하나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상식'들이 사실은 특정 집단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무실 적정 온도 21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온도는 1960년대 몸무게 70kg인 40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으로, 여성의 신체적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남성 중심적 기준은 의학 분야 전반에 만연해 있습니다. 심장마비 증상도 남성의 경우를 표준으로 정의되어 있어, 여성들은 자신의 심장마비 증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도 임상시험 참가자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시기가 길어, 여성에게 미치는 부작용이나 효과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이라고 표현합니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집단의 필요에 따라 지식이 생산되다 보니,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 문제는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왜곡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담배회사의 지식 조작 전략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동시에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는 담배회사들이 어떻게 '과학적 지식'을 조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담배회사들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체계적인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1969년 필립모리스는 '스트레스' 개념을 만들어낸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에게 3년간 15만 달러라는 거액을 지원했습니다. 목적은 폐암의 주요 원인이 담배가 아니라 스트레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구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담배회사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식을 의도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했습니다.

이 사례는 지식 생산 과정에서 자본과 권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과학적 연구라고 해서 모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은 아니며, 누가 연구비를 지원하고 어떤 목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신약 개발에 숨겨진 글로벌 불평등

현대 의학의 또 다른 문제점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글로벌 불평등입니다. 제약회사들은 당연히 수익성을 고려하여 연구개발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 결과 구매력이 높은 선진국에서 필요로 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는 활발히 개발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집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말라리아, 결핵, 수면병 등은 주로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가 부족합니다. 반면 선진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심혈관 질환이나 암에 대한 치료제는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건강에 대한 권리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불평등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지식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몸에 새기는 흔적

김승섭 교수의 연구 분야인 사회역학의 핵심은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여러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소개됩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가구 소득수준에 따라 영유아의 뇌 구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태어났을 때는 거의 차이가 없던 대뇌 회백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 수준에 따라 크기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뇌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중세 유럽 흑사병 시기의 성별 사망률입니다. 평상시에는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보다 높았지만(1.18 대 1), 흑사병이 유행할 때는 오히려 여성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0.89 대 1). 이는 재난 상황에서 성별에 따른 사회적 대우의 차이가 생존율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성 직장인의 우울증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이는 가사노동의 이중 부담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이처럼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개인의 몸과 정신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 학계의 구조적 문제들

저자는 한국 학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현재 한국의 학계 평가 시스템은 국제 학술지, 특히 영어권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연구보다는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의 연구 주제를 선택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고유한 건강 문제를 연구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영어로 작성하여 해외 저널에 발표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는 한국어로 된 지식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한국 사회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 독자들을 위해 연구 내용을 각색해야 하는 문제를 낳습니다.

이런 현실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말 필요한 지식의 생산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지식 생산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역사 속 질병과 사회의 관계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오가며 지식 생산의 역사를 추적한다는 점입니다. 1348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지시로 파리 의과대학 교수가 작성한 흑사병 원인 보고서부터 최신의 유방암 치료 연구까지,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풍부한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조선시대의 전염병 대처법, 일제강점기 조선의 건강 수준, 고대 그리스의 인체 이해와 근대 의학 발달사 등을 통해 질병과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각 시대마다 권력을 가진 집단이 어떻게 질병을 해석하고 대응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런 역사적 고찰을 통해 저자는 현재 우리가 당연시하는 의학 지식들도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런 지식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한계를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데이터로 말하는 현실

사회역학자답게 김승섭 교수는 이 책에서도 풍부한 데이터와 통계를 활용합니다. 1,120편의 논문을 검토하고 300여 편의 문헌을 인용한 만큼, 제시되는 모든 주장들이 견고한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만들어진 배경과 맥락을 함께 설명합니다.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인지, 누가 연구비를 지원했는지, 어떤 방법론을 사용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석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생산되지 않은 데이터'에 대한 관심입니다. 어떤 집단의 건강 상태는 정기적으로 조사되지만, 어떤 집단은 아예 통계에서 제외되거나 분석 대상이 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이런 '데이터 사각지대'야말로 사회적 불평등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기존의 지식 생산 구조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더 공정하고 포용적인 지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지식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집단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연구가 필요하고,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지식이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윤리적 책임이 중요합니다. 누가 연구비를 지원하는지, 연구 결과가 어떻게 활용될지, 연구 과정에서 소외되는 집단은 없는지 등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연구자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적 차원에서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지식의 역할

김승섭 교수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가치는 '평등한 건강'입니다. 건강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입니다. 그는 "건강은 사랑하고 일하고 도전하기 위한 삶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올바른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전달될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왜곡되거나 편향된 지식이 유통되면,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지식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전문가들만의 영역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 감시하고 견제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주는 특별한 가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단순한 의학서나 사회과학서를 넘어서는 책입니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상식'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식의 불평등 문제는 많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방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뉴스에서 접하는 의학 정보나 건강 관련 연구 결과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누가 이 연구를 했을까?',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일까?', '연구비는 누가 지원했을까?' 같은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개인의 건강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의료진, 연구자,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업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건강과 의학에 대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건강과 질병, 지식과 권력, 평등과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우리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줍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책입니다. 질병과 사회의 관계, 과학적 지식의 생산과 유통, 건강 불평등의 문제 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된 지금, 이 책이 제시하는 통찰들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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