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오브아프리카 카렌 블릭센 - 케냐에서 보낸 17년간의 사랑과 상실을 그린 자전적 회고록 걸작
아프리카의 붉은 대지와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간 한 여성의 깊은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는 작가가 17년간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하며 경험한 모험과 우정, 사랑과 이별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낸 자전적 회고록입니다. 1937년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이 작품은 1985년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으로 영화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로마시대 작가 플리니우스의 'Out of Africa always something new'에서 따온 제목처럼,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하나하나의 일들을 기억하며 인생의 깊은 의미를 탐구한 문학의 걸작입니다.
카렌 블릭센의 파란만장한 아프리카 여정
카렌 블릭센(1885-1962)은 덴마크 룽스테드의 유니태리언파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코펜하겐, 파리,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한 교양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1913년 스웨덴인 친척인 브로르 본 블릭센피네케 남작과 약혼한 후 함께 케냐로 이주하며, 1914년 결혼과 동시에 나이로비 근교에서 커피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령 동아프리카였던 케냐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과 동시에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15년 남편을 통해 매독에 감염되어 오랜 기간 고생해야 했고, 당시 매독은 치료가 몹시 어려운 질병이었기에 평생 그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아버지도 매독으로 인해 자살했던 가족력이 있어 그 충격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1925년 남편과 이혼한 후, 경제 대공황과 고르지 못한 커피 작황으로 인한 농장의 파산까지 겪으며 그녀의 아프리카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의 17년은 그녀에게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케냐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알게 된 영국의 비행사 데니스 핀치해턴(Dennis Finch Hatton)과의 만남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졌지만, 1931년 데니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그녀의 아프리카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50여 개 에피소드로 그려낸 아프리카의 일상과 철학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전체적으로 50여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서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룹니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인 '카만테와 룰루'에서는 농장의 원주민들과의 만남과 교류, 두 번째 부분인 '농장에서 일어난 오발 사고'에서는 아프리카 생활 중 겪은 다양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세 번째 부분인 '농장을 찾은 손님들'에서는 아프리카로 찾아온 다양한 방문객들과의 에피소드들을, 네 번째 부분인 '어느 이민자의 노트에서'는 아프리카 생활을 통해 얻은 철학적 성찰과 깨달음들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부분인 '농장과의 작별'에서는 아프리카를 떠나며 겪은 마지막 순간들의 아쉬움과 그리움을 그려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카렌 블릭센이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맺은 깊은 유대관계입니다. 키쿠유족을 비롯한 현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단순한 농장주가 아닌 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법정 문제에서 이들을 도우며 증거 확보와 고소장 작성 등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젊은 여성 농장주는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데니스 핀치해턴과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
책에서 가장 아름답고 애절한 부분은 역시 데니스 핀치해턴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귀족 출신 비행사였던 데니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으며,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를 비행기로 누비며 살아가는 모험가였습니다. 카렌과 데니스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깊이 끌렸습니다. 특히 데니스가 들고 온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아프리카의 들판을 공명시키며 두 사람의 마음까지 공명시키는 장면은 이 책의 가장 로맨틱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사파리를 떠나고, 야영 중에 춤을 추며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카렌은 실제로 데니스의 아이를 두 번이나 가졌지만 모두 유산되었고, 그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깊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남편과 별거하고 이혼한 후 카렌은 데니스와의 결혼을 꿈꾸었지만, 자유를 사랑하는 데니스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두 사람의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했지만, 그들의 사랑 자체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1931년 데니스의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는 카렌에게 인생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과 함께 커피 농장의 파산까지 겹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아프리카에 머물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데니스와의 사랑 이야기는 책 전체에서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다른 장들과는 달리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과의 깊은 유대와 상호 이해
카렌 블릭센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보여주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당시 유럽인들의 일반적인 관점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녀는 키쿠유족, 마사이족, 소말리족 등 다양한 부족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농장에서 일하던 키쿠유족 소작인들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단순한 고용주가 아닌 그들의 보호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했습니다.
법정 사건에서 증거 확보와 고소장 작성 등의 결정적 역할을 하며, 젊은 여성 농장주는 이들의 두목이 되었고 급기야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신임과 존경의 눈길을 보내는 아프리카인들을 보며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고, 이들을 창조한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졌다고 기록했습니다. 카렌이 법정에서 가져온 판결문은 케냐인들에게는 하나님과 다름없는 절대적 말씀이었습니다.
카렌 블릭센이 아프리카 생활을 정리하고 덴마크로 돌아갈 때, 농장에서 소작을 하던 수많은 키쿠유족이 몰려와 자기들의 거주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했습니다. 그냥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책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아프리카인들이 덴마크 여 농장주를 얼마나 절대적 존재로 여겼는지, 그리고 카렌이 왜 그들을 뿌리칠 수 없었는지를 독자들은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정적 문체로 그려낸 아프리카의 자연과 풍경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카렌 블릭센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으로 그려낸 아프리카의 자연 묘사입니다. 그녀는 케냐의 광활한 사바나, 킬리만자로 산의 웅장한 모습, 석양에 물든 아카시아 나무들,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고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독자들은 그녀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문장을 통해 직접 아프리카의 대지를 밟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녀가 묘사하는 아프리카의 하늘과 구름, 별빛 가득한 밤하늘의 모습은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어린 시절 혼자 산에 올라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상에 젖곤 했던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카렌 블릭센의 자연 묘사를 보고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라는 감탄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아프리카는 단순한 이국땅이 아니라 영혼을 정화시키는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야생동물들에 대한 묘사도 특별합니다. 사자, 표범, 코끼리, 기린 등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동물들이 그녀의 펜 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특히 사자와의 조우나 코끼리 무리와의 만남 등은 독자들에게 아프리카 야생의 신비로움과 경외감을 전달합니다.
영화화와 문학적 성취, 그리고 현대적 의미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85년 시드니 폴락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카렌 역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데니스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존 배리가 작곡한 영화 음악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특히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함께 영화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원작 소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원작은 50여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회고록 형식으로, 데니스와의 사랑 이야기는 그 중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반면 영화는 로맨스에 초점을 맞춰 각색되었으며, 원작에는 없는 서사적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원작의 정신과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경을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겨 많은 사람들에게 카렌 블릭센의 작품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렌 블릭센은 덴마크로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헤밍웨이와 카포티 등 동시대 작가들의 존경을 받았고, 1959년 미국 여행 때는 아서 밀러, 펄 벅 등이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1954년과 1957년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그녀의 다른 작품들인 '바베트의 만찬', '운명의 일화들' 등도 영화화되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현대 독자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와 교훈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국적인 배경이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들 - 사랑과 상실, 희망과 절망, 만남과 이별 - 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카렌 블릭센은 아프리카에서의 17년간을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와 통찰을 독자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특히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소통에 대한 그녀의 경험은 현대의 다문화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줍니다. 카렌이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맺은 관계는 단순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과 이해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다소 온정주의적인 면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태도였습니다.
또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카렌 블릭센의 철학도 환경 문제가 심각한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자연을 정복하거나 개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조화롭게 공존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학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서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종말과 문화 간 만남을 생생하게 기록한 귀중한 문학적 증언입니다. 카렌 블릭센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와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모든 사람들, 이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 그리고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쓰인 회고록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카렌 블릭센이 아프리카에서 보낸 17년간의 경험이 여러분의 인생에도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기를 바랍니다.
